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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한국사)

고조선 : 단군조선 위만조선

by 하나_A 2025. 5.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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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최초의 국가는 '고조선'입니다. 이 고조선의 건국과 관련된 신화가 있죠. 흔히 우리가 아는 '단군신화'입니다. 우리의 조상은 단군이고 그 단군의 탄생과 관련된 이야기이죠. 단군은 환웅과 웅녀 사이에 탄생한 아이입니다. 여기서 '환웅'은 환인의 서자로 인간세계를 다스리러 내려온 신입니다. 우리의 '선민의식'이 나타나는 부분인데, 하늘로부터 선택받은 민족이라는 의미를 뜻하죠. 또 이를 '천손 사상'이라고도 합니다. 하늘의 자손들이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환웅이 인간 세계로 올 때 '풍백(바람), 우사(비), 운사(구름)'를 거느리고 내려왔습니다. 여기에 '애니미즘'적 요소가 보이고 농경사회 모습이 나타납니다. 후에 같은 동굴에 살던 곰과 호랑이가 환웅에게 인간이 되게 해달라고 빕니다. 그러자 환웅은 둘에게 쑥과 마늘을 주며 동굴에서 100일 동안 해를 보지 말고 버티라고 하죠. 이는 각각 곰과 호랑이를 토템으로 섬기는 부족을 뜻하므로 '토테미즘'이 보입니다. 이 약속을 지켜낸 곰은 '웅녀'로 불리는 여자 사람이 되었지만 결혼할 상대를 찾지 못하고 신단수 아래서 아이 가지게 해달라고 빌었습니다. 이때 환웅이 잠시 변하여 웅녀와 결혼하고 아들을 낳았는데 그 이름이 '단군왕검'이라 합니다. '단군왕검'은 단군+왕검을 합친 말로 여기서 '단군'이 무당을 뜻하기 때문에 '샤머니즘'이 보이죠. 이 부분을 보았을 때 제정일치 사회, 종교와 정치적 권력을 분리하지 않고 한 사람에 의해 지배되는 사회라는 것이 나타납니다. 단군왕검은 조선이라는 나라를 세웠다(기원전 2333년)고 나타나 있으며 이 나라를 우리가 고조선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즉, 우리가 칭하는 조선은 고려 이후에 나타난 조선과 구분하기 위해 옛 조선이라는 의미로 쓰이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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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의 문화는 청동기 문화를 배경으로, 청동기 시대에 언급했던 것들을 특징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고조선의 처음 중심지를 살펴보면 청동기 시대 유물이 분포되어 있습니다. 즉, 요령을 중심으로 거친무늬 거울, 비파형 동검, 미송리식 토기 그리고 탁자식 고인돌이 나타납니다. 고조선은 점차 성장하여 주변 나라와 교역하며 중국의 선진 문화를 수용하였습니다. 기원전 4세기 왕을 칭할 정도로 체제가 정비되어 왕권이 안정되었고, 기원전 3세기에는 관리(대부, 박사)들이 정비되는 것이 보입니다. 가장 가까운 과 자주 부딪쳤는데, 부왕은 연의 장수 진개의 침략을 받고 영토를 상실하고 왕검성(평양)으로 천도하였습니다. 부왕에서 준왕으로 왕위를 세습할 정도로 성장하였지만, 이길 수 없었죠. 그렇게 고조선의 중심지가 요령 지방에서 한반도의 대동강 유역으로 이동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중국의 역사 :

나라(요, 순) -나라 - 나라 - 춘추전국시대(제, 연) - 나라 -나라 - 위・진・남북조 - 나라 - 나라 → …

고조선 ------------------------------------------------------ 초기국가 - 삼국시대 ----------- 통일신라

 

혼란스럽던 중국의 전국 시대가 끝나고 진이라는 통일 왕조가 등장했지만, 곧 진-한 교체기가 시작되면서 다시 혼란스러운 시기가 되었습니다. 이때 중국에서 한반도로 넘어온 무리가 있는데 그 중 위만이 있었습니다. 조선의 사람처럼 상투를 틀고 우리 옷을 입고 온 그에게 준왕은 서쪽 경계를 지키게 하였으나, 세력을 키운 위만은 왕검성을 공격하고 준왕을 몰아내는 데 성공하여 위만 조선을 성립하였습니다. 이후 준왕은 남으로 내려가 진왕이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고조선이 철기 문화를 본격적으로 수용하고 철제 농기구를 사용하면서 농업 생산력이 크게 성장하였습니다. 또한 한반도 내의 나라(, )과 중국의 사이에서 중계무역으로 큰 이익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이것을 한이 두고 보지 않았고 고조선과 부딪히기 시작했습니다. 1차에서는 고조선이 승리하였으나, 오랜 전쟁으로 내분이 일어나 멸망하였습니다.

 

이후 한은 고조선 영역에 한 군현 4개(=한사군)를 설치하였습니다. 임둔군, 진번군, 현도군, 낙랑군이 그것입니다. 또한 저항하는 고조선 유민들을 더 강하게 지배하기 위해 기존의 8조법60여 조로 확대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고조선 유이민이 남쪽으로 이동하면서 진이 더욱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진'이라는 나라는 후에 삼한으로 발전합니다. 그러면서 진왕이라 불리던 '준왕'은 (마)한왕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의 8조법에 대해서 더 알아보자면, 일부인 3개 조항만 전해집니다.

'사람을 죽인 자는 즉시 죽인다.'라는 문장에서 생명과 노동력을 중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남에게 상처를 입힌 자는 곡식으로 갚는다.'라는 조항에서는 사유재산 제도가 존재한다는 점을, '도둑질한 자는 노비로 삼는다.'에서는 '노비'가 있는 것으로 보아 계급이 나누어져 있다는 점, 그리고 '단, 용서를 받고자 하는 자는 50만 전을 내야 한다.'에서 '전'이라는 화폐 단위로 보아 화폐를 사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고조선에 대한 기록을 통해 우리는 고조선에 대해 알고 배울 수 있게 되었는데요. 이런 기록이 우리나라에서 나타난 시기는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역사서라는 것이 쓰여지기 시작한 것도 삼국시대부터였고, 애초에 삼국으로 나누어진 나라에서 자기 나라의 역사서가 아닌 그 이전의 고조선에 관해 역사서를 쓸 이유도 없었겠죠. 고려에 들어서도 굳이 고조선에 대해 언급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첫 통일 국가였던 통일신라 때도, 그 이후 후삼국시대를 지나 다시 통일된 고려 때도, 과거의 영광인 내 나라를 부흥시키자 하는 운동이 나타났으니까요. 고조선에 대해 쓰기 시작한 것은 '우리는 하나, 한민족'이라는 의식이 필요할 때 였습니다. 그래서 고려가 몽골의 침략을 받고 이후 원나라(=몽골)의 지배를 받게 되었을 시기에서야 나타났습니다. 이런 의식을 기억한다면 관련 사서를 구분하기도 쉬워지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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